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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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바라보는 자(전 11:4)

유앙겔리온 2022. 8. 5. 20:01

구름을 바라보는 자
전 11:4
찬 88, 445

전11: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 

  오늘 주신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구름을 바라보는 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구름을 바라보는 자를 이해하려면 먼저 '구름'이란게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구름은 수증기가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결정체로 무리지어서 공기 중에 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구름은 비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뭄 때는 단비를, 우기 때는 홍수를 유발할 수 있는 것이 구름입니다.  

  그런데 이런 '구름'의 특징은 고정된 위치, 고정된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뜬구름이란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구름은  풍세에 의해서 이동하고 기온에 따라서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 구름입니다. 

  구름은 이처럼 가변적이고 임시적이라는데 그 상징성이 있습니다. 구름은 가변적이고 임시적이고 불확실한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이란 뜻은 가변적인 사람, 임시적이고 불확실한 것을 바라보고 거기에 소망을 두는 사람"으로 해석해도 괜찮습니다. 

  여기 '구름을 바라보는 사람'에서 "바라보다"는 말에 사용된 히브리어는 “라아”입니다. 기본적으로 눈의 활동으로 “보다”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보다”는 뜻과는 구별됩니다. 미세한 것을 들여다 보듯이 세심하게 탐색하는 행동, 즉 "지켜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며 소망을 두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은 구름을 보고 무엇을 결정하려고 그것을 탐색하고 그 구름에 소망을 두고 있는 자입니다. 구름에 기대어 사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쳐다보고 사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땅을 보고 사는 자는 땅의 것으로 살 것입니다.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자는 하늘의 것으로 살 것입니다. 미래를 쳐다보고 사는 자는 미래의 꿈과 소망으로 기쁨을 누릴 것이요, 과거를 쳐다보고 사는 자는 과거의 아픔과 분노와 아쉬움에 발이 묶여 주저앉을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구름을 바라보는 자'가 되어서 구름을 바라보며 거기에 소망을 두거나 구름을 바라보며 삶의 기준을 설정하면 안됩니다. 구름과 함께 옮겨지고 구름과 함께 사라지고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사는 자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구름을 바라보면서 위치를 설정하지 않습니다. 구름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구름을 잡으려고 달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구름이 아닌 그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구름이 아닌 그 어떤 것을 바라보며 거기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분명하고도 선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겸손히 "하나님만 바라라"했습니다.

  "말씀을 바라보라"했고, "주를 바라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준입니다. 말씀이 기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입니다. 기준이 흔들지 않아야 그 기준을 붙들고 사는 이들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까마귀가 머리 나쁜 새로 유명했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까마귀의 발음이 까먹다랑 어감이 비슷하며,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말이 까마귀를 연상시켜서 비롯된 말이라고 하지요. 


  거기다가 어떤 조류학자의 이런 편견을 바탕으로 연구된 것에 의해서 까마귀는 먹을 것을 숨겨둘 때 그 기준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에다가 둔다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건망증이 심한 새라고 일컬어지기 까지 했습니다. 흘러가는 구름에 기준을 두고 먹을 것을 숨겨두니 나중에 먹을 것을 허망한데서 찾게 되고 당연히 못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런 까마귀를 선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불쾌하게 생각하고 흉조라고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에 의하면 까마귀는 대단히 영리한 새로 밝혀졌습니다. 어떤 교수가 까마귀로 실험을 하나 했는데요. 애벌레와 땅콩을 숨기게 한 다음에 4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먹이를 찾게 하였는데 맛있는 애벌레를 찾아먹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닷새가 지나고 나서는 애벌레는 쳐다보지 않고 땅콩만 먹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애벌레가 부패되어서 먹을 수 없는 것이 되었으므로 그것을 찾는 것은 시간낭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먹이를 숨긴 장소와 시간 음식 종류까지 전부 기억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찮은 새 한 마리도 일시적인 것, 썩은 것, 허망한 것, 생명없는 것, 그런 것들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살아가지 않는데 우리 인생들이 일시적인 것, 썩은 것, 허망한 것, 생명없는 것, 그런 것들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처럼 일시적인 것, 썩은 것, 허망한 것, 생명없는 것, 그런 것들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살아가는 이런 인생은 결국 쓰레기통을 뒤지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구름을 바라보고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구름 넘어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에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구름만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전도서 기자는 이 말씀을 통해서, 구름을 바라보는 자차럼 해서는 안될 것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풍세나 구름을 살피고 보면서 이유를 찾고 핑계를 데서 씨를 뿌리는 일과 거두는 일을 하지 아니하려는 것에 대해서 깨달음 주시고 교훈을 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풍세 때문에 구름 때문에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 못할 이유를 찾을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할 방법을 찾는 지혜로운 백성이 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에디슨이나 베토벤은 창각장애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이 청각장애를 핑계 대며 좌절했다면 전기의 발명이나 그 위대한 교항곡이 과연 나올 수 있었겠습니까? 

   
  승리는 사람은 실수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 고 생각하며, 실패했을 때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패배자는 실수했을 때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핑계하며 실패했을 때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유를 찾습니다. 

  풍세를 바라보고, 구름을 바라보며서 그것을 핑계삼아 씨뿌리는 것과 거두는 것을 미루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패배자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선한 일에 힘을 다하고 기회가 되었을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 기회를 선용하여 선한 씨를 뿌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어 들이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야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