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 3:16~17) 본문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스바냐 3:16~17
찬송가 84, 369
습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된 영적 지식으로 우상을 섬기고 죄악된 삶을 살아가므로 인해서 일어나는 절망적인 현실적 상황들을 운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존감, 자신감이 모두 바닥으로 떨어져 부정적인 생각에 손을 늘어뜨리고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때 오늘 본문 말씀이 스바냐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놀라거나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때, 손을 늘어뜨리게 됩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손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데 손을 늘어뜨리고 있다는 것은 무능력과 무기력을 의미합니다.
스바냐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손을 늘어 뜨린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손을 늘어뜨리고 있는 이들에게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손을 늘어 뜨린다"라는 말 "라파"는 '저물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물다'는 것은 지레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절망이나 낙심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지레 포기하고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다윗도 엘리야도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들도 그들의 손을 늘어뜨리고서 절망하고 낙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은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라"는 격려와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동인들도 마찬가지 일 때가 많습니다. 손을 축 늘어뜨리고서는 의욕을 잃고 절망하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손을 늘어 뜨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했습니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의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골짜기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산위에 올라간 모세는 손을 들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손이 올라가면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이기고 손이 내려오면 여호수가가 전쟁에서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게 되었습니다"(출17:12).
여기서 "붙들어 올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타마크'는 '보호하다', '강하게 떠받치다' '꽉 잡다' 등의 의미를 가집니다. 예를 들면,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도다"(시63:8)에서 볼 수 있듯이 강력한 보호와 견지의 뜻을 담고 있는 어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싸워 이기기 위하여는 모세의 손이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힘에 부치어 내려오는 손을 어찌할 수 없을 때, 아론과 훌이라는 사람이 그의 양 손을 '타마크'하였습니다. 그들의 붙듬을 인하여, 모세의 손은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타마크가 있을 때, 그들은 그 난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께서 우리 가운데 계서서 우리의 늘어뜨려진 손을 '다마크'해주십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다마크해주신 은혜 가운데 살면서 삶의 힘겨움에 축 늘어뜨린 이웃의 손과 마음을 '타마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2,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리라" 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복음적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말미암아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을 보시고 이유없이 웃으시며 기뻐하시며 행복하심이 우리가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할" 이유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스바냐서는 유대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으로 출발하여 이방나라에 까지 미치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희망의 메세지입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다 심판 받아 황폐해지는 날이 올건데 '남은 자' 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그 분이 기뻐하셔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칭찬받을 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있어서 라기 보다는 그저 마냥 좋기에 좋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기쁨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것입니다.?그것은 우리가 그가 보내신 아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3,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했습니다.
여기 "잠잠히 사랑하신다"는 표현은 "그는 자신의 사랑 안에서 침묵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사하시기를 즐겨히시므로 그 사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잠잠히 하시는 사랑이십니다. 그렇게 세상 애정행각처럼 시끌벅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잠잠히 사랑하시는 사랑에는 실수가 없습니다. 성실히 사랑하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잠잠히'(하라쉬)는 '침묵하다'는 뜻 외에 '경작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잠잠히 사랑하시며'를 70인역(최초의 헬라어 번역성경)과 새번역은 '사랑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적인 의사표현에 그치지 않고,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경작)시키시는 구체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내면을 경작하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결코 지레 포기하며 우리의 손을 늘어뜨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잠잠히 사랑하심을 믿지 못한 사람들은 실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첩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으므로 말미암아서 수천년역사의 비극을 만든 것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잠잠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라도 내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이 말씀을 쉬운 성경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낙심하지 마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일방적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늘어진 손을 들어 올리고 힘을 내서 하나님이 경작하시려는 일에 참여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