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롬 8:19~25) 본문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롬 8:19~25
롬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롬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롬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롬8: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롬8: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롬8: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가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기념하며 지켜온 제39회 ‘환경주일’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환경이 붕괴될 위험성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는 환경위기시대입니다. 환경붕괴의 경고음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경고음을 들을 때마다 우리들은 마음에 부담이 느껴지고 일말의 책임감과 약간의 사명감마져 듭니다. 그러나 당장 가장 시급한 일은 아닐듯한 생각에 늘 다른 시급한 일에 밀려 후순위가 되기 쉽상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많은 과거의 찬란했던 문화나 문명의 붕괴의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앙코르와트의 버려진 신전들, 정글에 감춰진 마야의 도시들,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들, 등등..., 성경에도 수 많은 붕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노아홍수, 바벨탑 사건, 소돔과 고모라 멸망, 등등...,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그 누가 살아남아서 우리의 흔적을 보게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는 이 문명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2050년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지구과학자들이나 환경학자들이 많습니다. 6번째 대멸종이라는 말이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서 자주 화자 되고 있음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문명의 유효기간을 늘리고 붕괴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을 살아가는 위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환경문제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환경문제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우선순위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운 하나님이시지만 자연은 결코 자비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시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가 없습니다. 심는대로 거둡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피조물의 탄식'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탄식하다'는 말은 "신음하다, 끙끙 앓다"는 말입니다. 땅과 하늘이 신음하고 있으며, 산과 바다와 강, 그 안에 생존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끙끙 앓고 있습니다.
찬란했던 많은 것들이 붕괴할 때 신음소리를 냈습니다. 끙끙 앓았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지 못했거나 들었어도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벌써 성서시대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22절)고 진단했습니다.
그런데 피조물의 탄식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탄식이 아니라 피조물의 탄식은 "우리가 함께" 겪어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얼기설기 엮어져 있습니다. 피조물이 탄식하는 곳에는 우리의 탄식소리도 높아간다는 사실입니다.
'탄식'이 헬라어로는 ‘쉬스테나조(συστεν?ζω)’ 인데 이 단어에는 ‘재난을 같이 맛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탄식의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나나 너’뿐이 아님을 가리킵니다.
탄식하는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탄식하고 있는 피조물이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출현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시대에나 우리 시대에나 변함없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출현’입니다.
'고대'라는 말 '아포카라도키아'는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목을 쭉 빼서 내미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나타남.
어떤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의 구원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생산를 정의롭게 하는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소비를 생각있는 소비를 하는 자녀들입니다.
생산이 정의롭과 소비를 생각 있게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목을 쭉 빼서 내밀고서 애타게 기다리는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고백하는 이들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전 세계를 셧다운 시켰던 코로나19 바이러스 역시 천지만물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약탈한 우리 인간들의 탐욕의 결과입니다. 생산을 정의롭게 하지 못하고 소비를 생각있게 하지 못한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나 자신이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로
그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이냐?는 물음 앞에 서야 합니다.
언제든 성도들과 교회는 시대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는 다른 것들도 참 많지만 그 중에서도 환경입니다.
우리의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환경오염과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진이 있습니다. 미국령 미드웨이섬에서 촬영한 대형 조류 앨버트로스 사진입니다. 놀랍게도 죽은 앨버트로스의 몸통 부근엔 일회용 라이터, 병뚜껑 등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무심코 버리는 쓰레기는 자연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앨버트로스의 몸속에서 나온 쓰레기가 내가 버린 것일 수도 있고 또 나한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피조물이 그토록 목을 빼고 고대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