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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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게 하라(고전 14:37~40)

유앙겔리온 2022. 6. 30. 20:05

품위 있게 하라
고전 14:37~40

14: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14: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14: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14:40 모든 것을 품위있게 하고 질서있게 하라

  우리는 매일 사람을 상대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람을 상대하다보면 어떤 사람에게서는 품위를 느낄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서는 전혀 품위를 느낄 수가 없기도 합니다. 그리고 품위를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존중감이 가고, 신뢰가 가고, 호감이 갑니다. 그렇지만 품위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존중감을 갖을 수가 없습니다. 신뢰가 안됩니다. 호감보다는 적대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품위로 먹고 사는 세상은 아닙니다. 오히려 품위주의보다는 성과주의 사회입니다. 성과를 내야 대접을 받는 세상입니다.

  이런 성과주의 사회속에서는 사람의 실력이 가장 중요하게 평가됩니다. 그러나 이런 성과주의 사회에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사람이 품위를 지키고 유지하는 인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실력도 갖추어야 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더욱 갖추어야 할 것이 '품위"입니다.

  품위는 유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가족공동체나 교회공동체를 통해서, 그리고 만나서 친밀하게 교제하는 사람들과의 공감에서 생기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품위가 무엇입니까?
사전적으로 '품위'는  "사람이 그 지위와 위치에 따라 갖추어야 할 성품이나 교양의 정도"를 품위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품위 있게'는 헬, 유스케모노스(euschemonos)로서 "어울리게, 적당하게, 교양 있게, 단정하게, 예의 바르게, 점잖게, 정직하게"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품위는 어울리는 것입니다. 적당한 것입니다. 교양이 있는 것입니다. 단정한 것입니다. 예의가 바른 것입니다. 점잖은 것입니다. 정직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의 지위와 위치에 따라 서로에 대해서 품위에 대한 기대를 갖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서 뽑혀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진 은사와 능력이 무엇이고 얼마나 센가보다도 이것을 어떻게 품위 있게 사용해서 덕을 끼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의 종들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한자 말에 목계(木鷄)라는 것이 있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닭"이라는 뜻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동요하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중국 주나라 선왕은 닭싸움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한 번은 왕이 당대 최고의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를 불러서 자신의 싸움닭을 맡기며 최고의 싸움닭으로 훈련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열흘이 지나자 선왕은 기성자에게 닭싸움을 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지금은 한창 사납고 제 기운만 믿고 있어 기다려야 합니다."

  열흘이 다시 지나고 선왕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바로 달려드니 더 기다려야 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고 선왕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아직도 다른 닭을 보면 곧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40일이 지났을 때 기성자가 선왕에게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닭이 소리 지르고 위협해도
쉽게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이 있어 마치 나무로 만든 닭, 목계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덕이 온전하여 다른 닭이 가까이 오지 못하고 보기만 해도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산닭이 목계처럼 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죽은 자라면 몰라도 산 사람인데 목계처럼 품위를 지켜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우리는 지정학적인 것과 역사적으로 겪어온 삶의 무게로 인해서 유난히 조급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 자신을 욕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동료 중에 자신을 제치고 올라오는 사람은 없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염려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목계처럼 의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 덕이 온전해지며, 그 덕을 통해서 복음 전하는데 좋은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로 인하여 우리가 섬기며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가 동요 없이 잘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특히, 인류는 재앙을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러왔습니다. 어느 시대이든 재앙이 없는 때는  없었습니다. 일상적인 때는 그래도 품위를 생각하고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재앙이나 재앙 수준의 어떤 일을 겪고 있을 때에는 품위 정도는 내팽계처도 괜찮을 것만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품위를 내 평계쳐버린 사람들만 있었다면 역사는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가운데서도 품위를 지킨 이들이 있기 때문에 역사는 발전해 왔고, 또 그런 사람들이 있는한 미래도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속 구절에 보면, 페스트(흑사병)가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자, 주인공 리유는 생각합니다. 

  전염병과 싸워 이길 방법은 ‘품위를 지키는 일이다. 품위를 지키는 일이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일)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리유의 직업은 의사입니다. 그는 무수한 환자들이 죽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끝내 페스트를 치료하는 혈청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은 해내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고린도전후서는 바울사도가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 것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의 모든 문제는 은사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풍성한 은사와 능력을 품위 있게 사용하지 않음으로 오는 혼란이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회의 모든 문제는 품위있게 그리고 질서 있게 행하면 해결될 문제라는 것입니다. 

  성도가 기도하는 일도 중요하고 성경을 깊이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도 품위를 잃어버리면 도리어 조롱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을 때, "품위를 지키는 일" "제 할일을 해내는 일"을 충실하게 해내는 일이야 말로 가장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들은 "천박하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정하고 품위 있게 대처하고 행동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