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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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신 예수(요 13:12~17)

유앙겔리온 2022. 5. 30. 23:30

스승이신 예수
요 13:12~17

요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요13: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요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요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오늘은 스승의 날로 기념하는 기념일입니다. 주신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스승이신 예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내용이 달라지고 결과가 달라집니다. 어떤 부모, 어떤 친구, 어떤 스승, 어떤 책, 어떤 종교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행복해 질 수도,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나,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또한 좋은 배필을 만나는 것이나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큰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의 만남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만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단 한 번의 잘못된 남을 통해서도 행복을찾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단 한번의 만남으로도 불행해지는 사람이 참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만남을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특히 제자는 스승을 잘 만나야 합니다. 모든 인생은 한번쯤 누구의 제자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스승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태어난지 20개월만에 시각. 청각. 말하는 능력을 잃은 헬렌 켈러는 7세때 설리번 선생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50년 가까이 함께 지내며 수많은 책을 펴냈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많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그녀는 3중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버드대학을 졸업하던 날 졸업식장에서 연설위 기회가 주어졌을 때, " 항상 사랑과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준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책에 이런 글을 썼습니다.

  "만일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째 날에 나를 가르쳐 준 설리번 선생님을 찾아가 그 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나서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노을을 보고 싶습니다."고 설리번 선생님께 감사함을 나타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설리번 선생보다 휠씬 더 위대하신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을 부지런히 만나고 친밀하게 그분의 가르침을 받으사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스승으로 오셨고, 스승으로 사셨고, 스승으로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스승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처음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가복음 1: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을 보내시면서 어떻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는지 가르치셨습니다. 또 지상에서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보실 때, 그 특별한 낚시를 계속하라고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인 날,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을 때의 일입니다. 최후의 만찬장에서 예수님은 갑자기 벌떡일어나셔서 세수대야에 물을 떠 오시고 만류하는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승이며 주로서, 그의 제자들이며 종인 그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본문 12절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곧 이 말씀은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본문 15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줌으로 후에 제자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한 것은 제자들이 자기와 같은 '스승 운동'을 확산시키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셨습니다.

  당시에 스승이라는 지위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되는 권위주의적인 스승상만 가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스승 노릇을 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평가가 얼마나 가혹했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과 달리 제자들의 발을 씻음으로 사랑과 희생의 모범을 보이신 스승이셨습니다. 뿐만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를 배신할 제자의 발까지 씻겨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는 본문 14절에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이 점이 모든 스승들에게 영원한 모범을 보여준 스승상입니다. 

    본문 14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주님이시면서, 우리의 참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참 스승이요, 동시에 탁월한 스승이셨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헬렌켈러가 설리반을 만난 것보다 100배 1000배 10000배로 좋은 '은혜와 진리의 스승'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제자들은 스승이신 주님으로부터 발을 내 맡기고 씼음을 받은 그 후에 서로 발을 씻는 일을 했습니다. 그보다 더한 일도 했습니다. 그들은 만민에게 사랑의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그 전도하는 과정에서 자기들의 가진 것을 제공하며 희생의 피를 뿌렸습니다. 12제자는 모두 순교했고, 그들의 본을 받아서 순교정신을 이어받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수 없이 많은 일들을 스승으로써 감당해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이 만큼 사람 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은 스승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서 스승으로 산 사람들의 헌신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 인권, 민주, 경제 등등에서, 그리고 모든 분야에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도 좋은 선생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출신들이 어디서 어떤 직책으로 스승과 같은 일을 할 때 주님이 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자신이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가지고 스스로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겼던 자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직책을 이용하여 타인에게 큰소리치고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스승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잘못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승이지만 낮아지셔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께서는 16~17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하셨습니다. 

  아무리 스승이 낮아져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다고 해도 스승이 제자보다 낮아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괜시리 내가 겸손해지면 무시당할까, 못나게 보일까 그런 것,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대로 겸손하다고 해서 스승이 제자보다 낮아지지는 않습니다.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합니다.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습니다. 

  참 스승이 절실히 필요한 이 시대에 스승의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최고의 스승이시고 참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이 땅에서 잠시 잠깐이라도 스승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사명과 역할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한 어떤 형태로든지 가르침을 받는 이들은 스승의 역할을 하는 이들과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마음을 다하여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