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잠 1:8~9) 본문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
잠 1:8~9
잠1:8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잠1:9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오늘은 어버이날이자 교회력으로 지키는 어버이주일입니다.
"효는 흉내만 내도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면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만큼 그 아비와 어미에게 효를 행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진정으로 안되면 흉내라도 내고, 매일 매순간에 안되면 기념일이라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그 아비와 어미에게 효를 행해야 할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라고 했습니다.
아비의 훈계를 잘 듣는 것이 효를 행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뭐 대단한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다지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비의 훈계를 귀담아 듣고 청종하는 것입니다.
'훈계'(히, 무싸르)의 본래 의미는 '징계'입니다. 여기에서 '책망', '경고' 또는 '교훈'과 같은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자녀에게 실제적인 생활 지침(훈계)을 주는 것은 아버지의 몫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내리는 징계와 책망을 속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 징계와 책망을 달갑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들으라'(히, 쉐마)는 가장 유명한 히브리어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들으라는 말은 단순한 듣기가 아닌 경청입니다. 듣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비의 훈계를 듣는다는 것은 아비를 사랑하고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잠 13: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했습니다.
아비의 훈계를 즐겨듣지 않는다는 것은 아비의 훈계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얕보고, 경시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소화시키지 못하는 음식이 결코 몸에 유익하지 않은 것처럼 훈계도 바르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성격과 삶이 황패해지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주변으로부터 많은 칭찬하는 소리, 아첨하는 소리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을 담아서 쓴소리를 해주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칭찬이나 아첨은 듣기 좋아하지만 따끔한 충고나 쓴소리를 달게 들을 줄 아는 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코 쉽지 않은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쓴소리를 달게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것을 다른 누구에게 맡긴 것이 아니라 아비에게 이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아비만이 그 자식에게 쓴소리를 진심을 담아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응석을 받아주는 능력 밖에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불쌍한 존재입니다. 자식의 응석을 받아주는 부모 역시 응석받이입니다. 진정한 부모라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식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하고 바르게 훈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아비로부터 훈계를 들을 때, 나는 경청하는 자세를 가지고 살겠습니다. 항상 존중하는 마음으로 아비를 바라보며 바른 자세로 대화하겠습니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거나 주변의 다른 일들에 산만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경청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얻고 아비의 이야기를 최대한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시간 마음의 결심을 하고 그렇게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책망과 징계를 하는 위치라면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면 그 자녀를 무릎에 안고서 아이가 말을 배우기도 전에 하나님의 법을 즉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어머니의 몫이었습니다.
'법'(히, 토라)은 글자 그대로 '법칙', '법령'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법'으로 해석된 히브리어 '토라'는 일반적으로 '십계명'이나 '모세오경'(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5권의 책)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고 지금도 그렇게 쓰입니다. 뿐만아니라 유대인의 가정에는 어미가 자식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 이상적인 곳이므로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도 같은 단어인 토라가 사용됩니다.
'떠나지 말라'는 이 말(히, 나타쉬)은 "버리지 말라"는 원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것, 가치없는 것,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것은 미련없이 버리게 됩니다.
많은 자식들이 어미가 전해주는 법을 그렇게 생각하고 가차 없이 차버립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어미가 전해주는 법은 낡고 가치 없어서 버려야 할 것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진품명품이 되는 보배를 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전해주는 법은 자녀들에게 족쇄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들의 인생에 담장 같은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성벽 같은 것입니다. 네 삶으로 사탄과 죄악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입니다. 만약 자녀들이 어미의 법을 떠난다면 그 순간, 그의 삶의 성벽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나를 두른 성벽이 사라진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빨리 파괴될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어미의 법을 떠나서는 안됩니다.
셋째로 네 아버지의 훈계를 듣고 네 어머니의 법을 귀히 여겨 떠나지 않고 살아간다면 어떻게 됩니까?
아버지의 훈계와 네 어머니의 법을 듣고 그것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하는 자의 머리의 아름다운 영광스러운 '관'과 같고, 네 목의 금사슬처럼 그를 돋보이게 하고 아름답게 할 것이라 했습니다.
관과 금사슬은 당시에 인생이 누리고 싶은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이것을 주고 싶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건 "자식은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즈음 처럼 부모자식 간의 관계가 단절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이 시대는 훈계와 교훈을 꼰대질로 멸시하는 시대입니다. "어른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속담을 누구도 인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아비의 훈계를 귀 기울여 듣고 그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않는 그 자녀들은 머리에 관을 쓰고 목에 금목거리를 걸게 된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부모의 훈계를 귀 기울여 듣고 그 법을 떠나지 않고 잘 지켜 삶으로 머리에 아름다운 관을 쓰고, 목에 금사슬을 걸고 사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