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21) 본문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21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요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현대를 일컬어 불안한 시대라고 합니다. 그 말은 현대인들에게는 평강을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보험회사에서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당신이 가장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설문조사를 했는데, 첫째가 건강문제, 둘째는 경제문제, 셋째는 노후문제라고 대답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 현대인들은 이런 저런 불안한 문제들 한두개쯤은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원래 불안이란 말이 '목을 조르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불안하면 목을 졸리는 것같은 질식감을 받게 됩니다. 이런 불안과 염려가 우리들 마음의 열을 올리고 몸의 열을 올립니다. 그래서 2차적으로 3차적으로 계속해서 몸과 마음과 행위에 분열을 일으켜 문제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어둠의 세력이 노리는 것은 성도들을 불안케 하고, 두려움과 무서움에 목이 졸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노림수를 간파하고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불안이 조성되는 것, 그것은 결코 건강한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 안에서 참 평안과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새은혜입니다.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과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던 백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불안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19절을 보면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유대사람들이 무섭고 불안해서 자기들이 모인 집의 문을 모두 꼭꼭 닫아 걸어 잠그고는 숨죽이며 옹기종기 모여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이제 다음 차례는 그를 따르던 우리 차례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치를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엄습한 지금 이 두려움은 나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힘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힘에 있다고 생각한 결과입니다.
저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죽였는데 우리의 목숨쯤은 그들에게는 파리목숨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 두려움이 찾아옵니까? 세상 힘에 내 안위가 달려 있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이, 사람이, 환경이, 물질이 더 크게 보일 때 두려움에 시달리게되고 불안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 평강이 찾아옵니까? 평강은 두려워하던 것들이 전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이 누구심을 알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참된 평강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는 창조주시이며 보존자이시며 심판자이십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간섭을 벗어나서 되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는 하늘에 나는 그 흔한 참새 한 마리도, 들에 핀 백합화 한 송이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꺾이는 법이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확실히 믿고 의지한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나 제자들은 평강을 잃고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십자가 처형을 당해 죽으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죽으신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무덤문을 열고 걸어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세상 권세자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문이 열리지도 않았고 잠궈놓은 문빗장도 풀리지 않았는데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그들을 향하여 주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강이 있을지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지금 두려워해서 문을 닫아걸고 숨죽이고 있는 그 대상이 결코 두려워 할 것이 아님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20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의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뀐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는 힘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해서 두려워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서는 그것이 아님을 알고 기뻐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보고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세주가 여전히 예수신줄 알고 기뻐한 것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께서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생긴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그것을 보고 예수신줄 알고 기뻐하고 있을 때,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이 보내셨던 것처럼 그들을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에게 보냄 받은 제자답게 살아가는 것은, 그 어떤 환경 가운데 보내심을 받았던지 두려워하지 않고 평강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예수님의 제자요, 예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서 너희들도 가서 두려움에 갇혀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평강을 흘려보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평강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강이 있어도 평강이 없다면, 물질이 있어도 평강이 없다면, 이런 것 저런 것이 다 있다고 해도 평강이 없다면 그런 것이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의 갖가지 모순된 삶의 깊은 곳에는 "평강 없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평강의 확보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평강은 돈 가지고도 안 되고 땅 가지고도 안되고 권력이나 명예가지고도 안 됩니다. 평강을 이런 것으로 얻을 수가 있다고 하면 이미 돈 가진자 땅 가진자 권력이나 명예가 있는 자들이 모두 독점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주셔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을 세상에보내신 이유이고, 또한 주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는 신약성경, 우리가 다니는 교회, 이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신앙적인 일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의 토대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확신이 주는 것 중에 가장 귀한것이 바로 평강인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