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무슨 권위로냐 묻는 이들을 물리치심(눅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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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권위로냐 묻는 이들을 물리치심(눅 20:1~8)

유앙겔리온 2022. 4. 14. 21:08

무슨 권위로냐 묻는 이들을 물리치심
눅 20:1~8

20: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20: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20: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20: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20: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0: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20: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20: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거셔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들어가신 예루살렘성전은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생각하셨던 그런 성전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은 장사하는 사람들의 시장이 되어있었고,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성전에 있던 환전상과 가축 매매상들을 몰아내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마 21:12~13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으로서 성전의 원래 기능을 회복하시려는 뜻에서 성전을 깨끗케 하신 일을 행하셨습니다만은 기껏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 정도를 둘러 엎으셨을 뿐입니다. 돈을 회수 할 수 없을 만큼, 또는 비둘기를 잃어버려 그들이 손해를 입을 만큼 과도하게 분노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교훈하고 가르치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했음에도불구하고 이 성전 정화사건은 성전을 중심으로 유대사회를 지배하던 사람들, 종교적인 틀인 율법으로 백성들 위에 군림하던 사람들에게는 이 사건은 충격이었고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자기들이 주인노릇하고 있는 성전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자기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성전을 정화하는 일을 행하심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신분의 위협과 권위의 위협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눅 19:47절에 보면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라고했습니다.

  이렇게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이들이 하루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예수님 앞을 가로 막고 서서 한 가지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이냐?"하는 질문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질문은 그냥 궁금해서나 잘 몰라서 묻는 그런 선한 질문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은 꾀를 내어 질문을 만들었고 각본을 짜서 그 질문을 예수님께 던진 것입니다. 
 
  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누구라고 하는지, 누구의 권위로 이런 일을 행하시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성전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쫓아낼 때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성전에서 가르치고 행하셨다는 것을 이들이 모를리 없습니다.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입에서 그 말을 직접 듣기 원했습니다. 

  이들이 이같이 질문한 것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시시비비에 걸려들기를 바란 것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주머니 속에 녹음기를 틀어놓고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했다고 말하면 '신성 모독죄'로, 내 뜻대로 했다고 하면, 산헤드린 공의회를 모독했다고 하면서 잡아가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질문은 처음부터 사악한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나님 아버지가 주신 권위요,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스스로 가진 권위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유대백성들이 인정한 권위입니다. 그런데 그 권위를 인정하기가 싫어서 그들은 예수님께 잘못된 질문을 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위하고 성전을 위해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다면 "무슨 권위로 그렇게 하느냐?"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교훈을 얻어 다시는 이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했었어야 합니다. 그랬더라면 복음서는 달리 써졌을 것이고 그들의 운명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나찌들에게 끌러가 죽음의 수용소에에 갇혀서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본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나치 놈들은 어떻게 저토록 비열하고 파괴적일 수 있을까? 어떻게 신은 저토록 사악한 놈들을 만들어냈을까? 어쩌면 신은 내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질문한 그들은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인 '스타니슬라브스키 레히'라는 사람은 다른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기회를 이용해 탈출할 수 있을까?" 해답을 얻을 때까지 집요하고 끈질기게 답을 구했던 그는 결국 시체들 속에 몸을 숨겨 수용소를 탈출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질문을 가지고 살고 계신가요? 자신의 질문을 점검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무슨 권위로 그런 일을 하느냐?고 사악한 질문을 하는 그 질문자들에게 대답대신 되묻는 방법으로 그 질문하는 자의 질문을 물리치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과연 이 질문은 예수님께 사악한 질문을 한 이들을 물리치는 질문이 되었습니다. 

  본문 5~6절을 보면,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했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답변을 찾아보려했으나 이렇게 저렇게도 대답을 하면 그 대답 때문에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유대교 최고 특권 계급, 학자 중의 학자들이 고심하여 낸 대답은 "잘 모르겠다"입니다. 그들의 무지함 그리고 완고함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세례 요한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권위는 죽어도 인정 못하겠고, 사람들이 두려워 그들이 진짜 생각하는 대로 두 사람이 그저 사람의 권세를 받아 일하는 존재라고 말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뻔뻔스럽게도 "어디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고 대답을 하고 물러 갔던 것입니다. 이들의 대답은 전적으로 자신들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한 답변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두 권위의 충돌을 보게 됩니다. 하나의 권위는 남을 깔보고 무시하며 넘어뜨리고 죽이고자 하는 권위였습니다. 본문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그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권위를 주신 이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을 버리시고 죽으시면까지 다른 사람을 세우고 살리려고 하는 권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지니신 권위입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이 주신 권위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권위는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고후 10:8절에 "주께서 주신 권세는 너희를 무너뜨리려고 하신 것이 아니요 세우려고 하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위는 사람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위임하신 권위가 무엇인지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작은 권위라도 주셨다면 그 권위를 통해서 우리가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그 삶을 풍성하게 하는 데 쓰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은 사악하고 잘못된 질문을 한 이들을 물리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저들과 같은 사악한 질문을 던지는 이들은 심판날에 물리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물리침을 받을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잘못된 질문인줄 알면서도 기여히 예수님을 넘어뜨리고자 하는 질문과 같은 그런 사악한 질문을 우리의 마음에나 입에 담지 않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