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현의 살림운동

내 손을 가르쳐(시편 18:34) 본문

카테고리 없음

내 손을 가르쳐(시편 18:34)

유앙겔리온 2022. 3. 16. 22:06

내 손을 가르쳐
시편 18:34

시 18: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사람은 모태에서 조성되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그 인생을 마감하기까지 평생 전쟁를 치뤄야 하는 전투적인 존재입니다. 더욱이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싸움을 해야하는 주님의 용사들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싸움의 과정입니다. 딤전 6:11-12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사도를 통해서,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시편기자인 다윗은 하나님께서는 평생 전쟁하는 좋은 군사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하여 모든 믿음의 권속들에게 평생 전쟁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치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시고 교훈하시는 모델로 사용하셨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다윗을 생각하면 싸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사람쯤으로 여길만한 싸움에는 이력이 난 사람으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다윗의 일평생은 전쟁 빼고는 생각할 수 도 없는 사람입니다. 다윗이 물매돌을 사용하는 솜씨나, 자기 자신의 칼 쓰는 솜씨나 활 쏘는 솜씨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자랑할 만도 하지 않습니까? 교만할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의 하는 말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성경 세 곳에서 똑같이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신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위시해서, 삼하22:35절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시 144:1절에서도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많은 전쟁터에 나아가면서 하나님께 이처럼 간절하게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고 손가락을 가르쳐 대적을 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손'과 '손가락'은 전쟁을 할 때 칼이나 활을 사용하는 지체들로서 전투에 관련한 모든 기술과 전술에 관한 것들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르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마드'는 '단련시키다', '훈련시키다'는 등으로(대상 25:7;렘 31:18;미 4:3) 하나님께서 내 손을 단련시켜 싸움하기에 적합한 자로 만들어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손이 주님께 붙잡혀 훈련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의 손은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손이 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걱정했습니다. 

  다윗도 잠깐 하나님께 붙잡히지 않고 하나님이 가르치시지도 아니하신 일을 자신의 손으로 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기억은 참혹한 범죄였습니다. 그러 했기에 그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손과 손 가락 하나 하나까지도 하나님이 가르쳐주시고 훈련해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서 주께서 "내 손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과거에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그것이 자신의 능력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술을 가르쳐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함께 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윗의 손을 가르치셨고 손가락까지 가르치셨습니다. 다윗의 골리앗과의 싸움은 "다윗의 담대함이, 탁월한 물매질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이 아니라 다윗의 손가락까지 가르치신 하나님의 수고와 열심히 이루어낸 결과였고, 다윗이 하나님이 그 손을 가르치시고 훈련하신대로 순종했기에 이루어진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를 대적하는 사울과의 전쟁에서도 그리고 그가 손에 피가 마를날이 없이 싸워야 했던 이스라엘의 대적들과의 전쟁에서도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무용담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내 손을 가르쳐주셨고 나는 가르쳐주신 하나님을 따랐을 뿐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다윗은 일상에서나 전장에서나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온 마음과 생각과 행함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가르침을 따르는 다윗에게 승리를 주셨던 것입니다.

  가을철 산에 오르다 보면 산속 다양한 동물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도토리나 상수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중 도토리나 상수리를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다람쥐와 청설모인데 이들은 겨울철 식량을 저축하기 위해서 땅속 곳곳에 열매를 묻어둡니다. 하지만 다람쥐와 청설모는 손은 부지런하지만 머리가 나빠서 자신이 어디에 도토리와 상수리를 묻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묻었던 도토리 중 95%는 찾아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찾아내지 못한 도토리 중에는 겨울이 지나고, 봄철에 싹을 틔우며 튼튼한 나무로 다시 자라납니다. 이렇게 자라난 나무는 숲을 이루고 산을 만들어 또 한 해 동물들의 양식이 되어 줍니다. 하나님이 다람쥐와 청솔모에게 손에 부지런함을 주셔서 그들이 숨겨놓은 5%만 찾아 먹어도 생존하게 하고 나머지 95%는 나무를 심는 행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람쥐와 청솔모를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생들을 다람쥐보다 청솔모보다 더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가르치는 대로 한다면 우리의 손으로 한 5%의 결과만 가지고도 우리는 넉넉히 생존할 수 있고 살지 않겠습니까? 다윗은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 손과 손가락을 가르쳐 싸우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또한 "내 손과 손가락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도 눈과 귀와 입을 가르치고 손과 발을 가르치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내 감각과 정서를 가르쳐 주의 일에 흥분하게 하시며 주를 향하여 황홀하게 하셔서 선한 싸움을 싸우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한국인들의 손재주는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지만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습니다. 일제식민지 생활과 6,25 전쟁을 거쳐 완전히 폐허가 되어 세계 최하위의 나라가 지금 이렇게 선진국대열에 설 수 있는 데는 한국인의 손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수단과 수완이 좋고 솜씨가 있어서 손으로 하는 일을 잘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럴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조상에게 물러 받은 솜씨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솜씨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우리의 손가락은 하나님의 훈련을 받는 일에는 오랜 기독교전통에 서 있는 서구인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한국기독교의 약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우리의 손이 한 일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좋은 솜씨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다면 더욱 하나님께 복을 받는 나라와 민족이 되리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손을 겸허하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위탁하고 그분의 인도대로 살아가는 것을 겸손히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손이 하는 것과 그 손가락으로 하는 일이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되어서 선한싸움을 싸는 데 능한 그리스동인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