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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의 그릇들의 비유(디모데후서 2:19-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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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집의 그릇들의 비유(디모데후서 2:19-21)

유앙겔리온 2016. 10. 25. 12:20

  오늘 저녁에 우리가 함께 나눌 비유의 복음은 "큰 집에 있는 그릇들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사용한 분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큰 집에 비유하고 있고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일꾼들을 그 큰 집에 있는 많은 그릇들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이 클 수록 사실 그릇들이 많이 쓰이기 때문에 그릇의 종류도 다양하고 그 양도 많을 것입니다. 옛날 대가족이 살던 집과 지금의 핵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그릇의 종류와 양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또 그 집이 어떤 집이냐에 따라서 그릇의 종류와 모양 같은 것들이 다를 것입니다. 

 

  오늘의 중심주제는 집에 있지 않고 그릇에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집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유의 중심인 그릇을 생각하는데 주안점을 두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여 말씀드립니다만은 바울 사도는 큰집에 있는 그릇을 단순한 그릇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 대해서 빗대어 비유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교회는 많은 그릇들로 채워져 있는 데 이 그릇들이 바로 하나님의 일꾼들이며 성도들인 것입니다.

 

  1. 그릇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 집의 주인의 것입니다. 소유권에 대해서 분명하게 해두어야 합니다.
그릇은 그릇 스스로의 것이 아닙니다. 그릇의 값이 얼마가 되었든 그것이 귀한 것이든 그렇지 않던간에 그 소유권은 그릇에 있지 않고 집 주인에게 있습니다.
큰 집에 있는 그릇들은 집 주인에 의해서 구하고 모아진 그릇들입니다. 모든 그릇들에는 사연을 담고 있을 것입니다. 어떤 그릇은 안주인이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이고, 어떤 그릇은 가난한 시절에 할부로 산 그릇이고, 어떤 그릇은 선물로 받은 것일 것이고,  어떤 그릇은 주워온 것도 있을 것이고....

  아뭍은 모든 그릇은 주인에 의해서 모집된 것이고 선택된 것이며, 값을 주고 이 집으로 옮겨진 것들일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집 주인은 집안에 있는 그릇들이 쓸모 있는 그릇이요. 그리고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한 그릇들을 사모으고 보관하고 있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집과 교회에 그릇이라고 할 때 그 소유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꾸 하나님의 것을 내것이라고 고집하고 우기니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물질도 시간도 건강도 모두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릇의 가치는 쓰여지는 것에 의해서 결정이 됩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인 20절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라는 부분만 보면 금그릇과 은그릇은 귀하고 나무그릇과 질그릇은 천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릇의 가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귀히 쓰이면 귀한  그릇이 되는 것이며, 천히 쓰이면 천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쓰이지 않으면 무용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일평생을 두고 한 번도 쓰임을 받지 못하고 깨트려지거나 남에게 넘겨진다고 하면 그것은 결코 행복한 일이 아닌 것입니다. 사람이나 그릇은 쓰여지는데 의미가 있는 것이고 존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릇은 쓰여지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잘 쓰여지는 그릇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어떤 그릇이 귀히 쓰이게 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겠습니까?
  그릇은 그릇 제작자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필요와 소용대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소용대로 만들어진 그릇이 그 소용대로 쓰여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그릇에게 달려 있습니다.
  21절을 봅시다. 21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성경의 본문이 말씀하고자 하는 것을 크게 벗어나거나 떠나면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보면 그릇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되는 것,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는 그릇"이 되는 것은 다른 데 있지 않고 곧 "이런 것에서 깨끗이 하면" 그랬습니다. "이런 것에서 깨끗이 하면" 바로 '이런 것'  이런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을 풀지 않으면 안됩니다. 무조건 가져다 붙일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이 가리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오늘 본문 2:14~19절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여기에 열거되고 있는 이 모든 불의한 것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19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 저의 백성을 아신다"고 하셨고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불의에서 떠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귀한 그릇이 되고 주인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기 전에 이러한 부정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야 합니다.
불의한 그릇은 반드시 깨뜨림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요즈음 정치드라마들의 공통점들이 무엇입니까? 불의함은 반드시 드러나고 만다는 것입니다. 자이언트도 그렇고, 대물도 그렇고, 아무리 은물한 것들도 시간이 문제이지 반드시 드러나고 만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귀히 쓰는 그릇들과 천히 쓰는 그릇들이 있습니다. 긍휼의 그릇도 있고 진노의 그릇도 있는 것입니다(롬 9:22, 23).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의 부정한 생각과 사악한 생활로 인하여 교회에 불명예를 가져 오고 또 다른 사람은 자기들의 본받을 만한 생활로 인하여 교회에 영광이 되고 명예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의 주인을 봉사하는데 헌신해야 하며 그의 쓰시기에 합당하도록 되어야 합니다.  여기 모여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모두가 다 귀히 쓰임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