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 3:16~20)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6~20
습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3: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습3: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습3: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스바냐 선지자 시대 유다의 상황은 나라 안팎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을 때였습니다. 스바냐는 “하나님께서 지키셨다”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선지자로 예수님이 오시기 약 60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이미 북이스라엘은 타락하여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한지 100년이 되었는데, 남유다도 정신을 못 차리고 우상숭배와 각종 부패와 타락에 물들어 가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남유다를 향해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셨고 백성들은 절망과 무기력감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네 손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또한 스바냐시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좌절시키고 기죽게 만드는 일들이 세상에 널려있습니다. 너무나 많고도 많습니다. 우리의 손은 자꾸만 늘어뜨려져 버리고 맙니다. 기도하는 손, 도구를 잡는 손이 늘어뜨려져 통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2600년 전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주셨던 그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시고 계십니다. "내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 ‘손을 늘어뜨린다'라는 말은 “열의를 잃다” 또는 “용기를 잃다”와 같이 절망이나 낙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관용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 손을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은 그렇게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는 말씀은 “네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기운을 내라. 힘을 내라. 어깨를 펴라. 기죽지 말라. 웅크려 있지 말고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손이 늘어뜨려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게 되겠습니까?
도구를 흘리게 됩니다. 아주 단순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정밀한 것에 이르기 까지 늘어뜨려진 손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살아가면서 우리의 손을 축 늘어뜨리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어느 때에 그렇게 됩니까?
나쁜 소문, 반복되는 실패, 현재의 고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과 같은 것들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이 우리를 괴롭게 할지라도 손을 늘어드리고서는 이제 끝났다거나 틀렸다거나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우리들의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7절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너의 가운데 계신다”에서 “가운데 계신다”는 말 ‘케레브’는 “내부, 중앙, 내장”이라는 뜻입니다. 가장 가까운데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표현 중에 가장 친밀하고 밀착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결정적인 문제는 환경 자체의 문제나 환경의 변화가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언제라도 손에 힘이 들어가는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운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 가운데서 뿐만 아니라 질병 가운데서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구원자 하나님이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할 때, “잠잠히”라는 말은 “조용히”란 말이 아니라 “변함없이, 쉬지 않고, 끝까지”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상관없이,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이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기뻐하시되 변함없이, 쉬지않고, 끝까지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이 “잠잠히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기뻐하심은 우리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사랑 때문입니다.
그리고 19~20절에서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상황속에서도 절대로 손을 늘어뜨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생의 힘든 밤을 지내더라도, 고난 중에 있더라도, 앞날이 두렵더라도, 낙심하여 손을 늘어뜨린 채 있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더 이상 우리의 손은 힘없이 늘어뜨려진 무기력한 손이 아닙니다. ?
우리의 손은 하늘의 기적을 가져오는 기도의 손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봉사와 섬김의 손이요,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감사의 손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손을 굳게 하고 믿음의 손을 높이 들어올려야 합니다.
출애굽기 17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전투중에 있을때, 모세가 손을 들고 있을 때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손을 내려뜨릴 때 아말렉이 우세해졌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려 승리를 돕습니다. 손을 늘어뜨려서는 안됩니다. 손을 늘어뜨리는데 일조를 해서는 안됩니다. 손을 들어올리는데 마음을 같이 하고 협력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손을 늘어뜨리지 맙시다. 손에 힘을 불어넣읍시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을 신실히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약속을 믿고 손을 늘어뜨리지 말고 손에 힘을 불어넣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