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 1:13~14)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딤후 1:13~14
딤후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 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딤후1:14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못한 것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운 지키려고 힘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것의 가치를 모르고 쉽게 넘기고 빼앗기고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아름다운 것에 증오심을 갖고 아름다운 것을 망가뜨릴려고 하는 병리적인 이들도 없지 않습니다.
바울사도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켜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사도가 그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네게 부탁한’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부탁한 것’ “파라데케”라는 말은 ‘맡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기탁물 혹은 신탁된 물건을 의미합니다.
바울사도는 이렇게 주님께서 믿고 자기 안에 맡겨주신 것을, 주의 이름으로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디모데 안에 맡겨주신 사역과 주어진 은사들과 자질들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 재능, 달란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지 우리가 하나님께 맡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바울과 같이 이 부르심을 인식해야 합니다. 의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지각을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에게 맡겨진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했고,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맡긴 것을 아름다운 것이라 했습니다.
여기 '아름다운 것'에
사용된 ‘칼로스’란 말은 높은 가치나 뛰어난 가치, 탁월함을 뜻합니다. “선함과 똑바름”이기도 합니다.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뭐든지 목적에 부합해야 아름다운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생명과 육신과 영혼을 맡겨주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지금의 나의 인생을 나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누군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던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해서 아름답게 생각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의 유혹과 핍박 속에서 쉽게 훼손되거나 잊히기 쉽다는것입니다. 하ㅃ님서 나에게 맡겨주신 아름다운 것은 또한 날 믿고 맡겨주신 각종의 은사들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를 우리는 아름답게 여기고 개발하고 키워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할찌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것으로 자랑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아름답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명을 아름답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름답게 느껴질 때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게 되고, 자랑하게 되고, 드러내어 보여주고 싶어하는 감정이 생기는 줄로 믿습니다.
뿐만아니라 그 지향성이 “아름다움”이어야 합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다움의 추구가 복음적입니다.
‘지키라.’ 헬라어 동사 ‘휠라소’는 도둑들에게서 궁전을 지키는 파숫꾼이 경계근무를 서면서 보물을 지킨다는 의미로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우리의 무관심과 잘못으로 유실되거나 그것이 빼앗겨지는 일이 없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눅 11:21~22절 말씀에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부패시키고 교회에 맡겨진 고귀한 보물을 교회에서 강탈하려고 혈안이 된 악한 마귀 사탄들이 사방팔방에 널려있습니다. 그들은 호시탐탐 우리가 가진 보물을 노리고 있습니다.
지키는 데는 댓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지켜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힘을 써야 지켜지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만 해도 29번씩이나 "힘쓰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체감할 때 남들보다 더 수고로운 삶을 산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참된 은혜는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참된 구원은 열심을 갖게 합니다. 아름다움을 사모하게 합니다.
추락하고 떨어지는데에는 수고로움이나 힘쓰는 것이 필요없습니다. 모든 물질은 저절로 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힘을 쓰지 않으면 안되며 수고의 에너지가 사용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은 올라가는 삶인 것입니다. 저 천성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걸어올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풀어놓으면 끝이 없는 것이 인간의 방종이고 평안함입니다. 더 그렇게 되었으면 되었지 더 좋아지는 결과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거룩한 부담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부담은 나를 짓누르는 것 같지만 나를 자유케 하는 것이고, 나에게 참된 안식과 안전을 주는 것입니다. 부담스럽지 않는 사람이 여려분을 예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부담스러운 사람이 여러분을 예쁘게 만듭니다. 예의있게 하고 바르게합니다.
이렇게 지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지킬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말씀을 붙들게 하시고, 때마다 은혜로 지킬 힘을 공급해 주시면 능히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 그것을 잘 지키되고, 끝까지 지킬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