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눅 19:37~40)

유앙겔리온 2025. 4. 16. 12:15

사순절여섯번째주일/종려주일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눅 19:37~40 

눅19: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눅19: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눅19: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눅19:40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영광의 삶, 부유한 삶, 안전의 삶, 성공의 삶을 다 마다하시고 그는 인간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종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여 3년 동안 복음을 가르치시고, 전파하시며, 치유의 사명을 마치신 후 마지막 예루살렘 행을 계획하시고 그 길을 떠나고자 하셨습니다. 

  자기를 기다리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인데도 만류하는 손길도 뿌리치시고 그는 인류의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그 길을 기여히 가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케줄을 정하시고 위험을 무릅쓰신체 예루살렘을 향하여 발걸음을 한발작 한발작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에 들어가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이미 성경에서 예고하신 대로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기로 하시고 그 일을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슥9:9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하셨습니다. 

  예수의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은 지루한 일상에 젖어있던 예루살렘을 술렁이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예루살렘에 겸손의 왕으로 들어오시는데, 백성들은 미처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는 종려나무 생가지를 꺾어 흔들며 자기의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깔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의전절차는 잘 갖추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그 이유는 온 무리들이 능력의 말씀을 들었고, 수 많은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분이 그리스도 곧 메시아가 틀림 없겠구나 하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눅19:38)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21:9) 하며 주를 높여드렸습니다. 

  그런데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찬물을 끼얹은 일을 했습니다.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39절) 하면서, 뜨겁게 소리치며 환영하는 이들을 막아섰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찬양하는 사람들을 꾸짖으라고 주님께 강하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와 같은 표현, 메시아로 칭송을 듣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행동이 책망받을만한 일이니, 잠잠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백성들이나 제자들처럼 주나 왕으로 부르지않고 선생이라고 부른 것 입니다. 

  이 때, 주님께서는 "이들이 소리치지 않으면 돌들이 소리치리라" 하시면서 바리새인들의 요구를 거절하시고 백성들과 제자들의 환영을 허락하셨고 고스란히 받으셨습니다. 그래 너희들이 지금 소리치지 않으면 너희 가슴에 응어리가 생길 것이고 건강을 헤치게 될 것이니 마음껏 소리치라고 편들어주신 것입니다. 

  정서가 건강해야 합니다. 정서가 병들면 뒤틀린 삶을 살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스광스러운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았다면, 율법의 백성으로서 예언의 말씀의 시각으로 보았다면 의당히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함께 찬송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더욱이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야 말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선포하는 메시지를 누구보다 더 외쳐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땅히 외쳐야 할 말을 외쳐야 할 사람들이 그 책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그 진리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사람이 하지 않는다면 돌들이 소리치게 할 것입니다. 

  무생물인 돌이 어떻게 소리 지를 수 있을 수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어떤 의미가 될까요? 

  돌들의 소리, 돌들의 울음은 언제 발생합니까? 돌이 움직일 때, 돌이 깨어질 때, 돌이 구를 때 즉 이변이 있을 때입니다. 일상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일상적으로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나 일상이 안될 때, 이변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여기 주님께서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하신 것은 마땅히 말해야 할 사람이 말하지 않으면 뜻밖의 사람, 심지어는 미물을 통해서라도 그 진실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땅히 진리를 외쳐야 할 사람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침묵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든 그 역할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주님께서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돌"이라고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돌은 소리가 없을 때가 평화의 때입니다. 돌들은 가만히, 잠잠히 물속에 잠겨있든지, 돌위나 돌아래에 그냥 조용하고 묵직하게 놓여 있어야 합니다. 돌들이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이변이 발생한 대단히 위험한 상황인 것입니다. 파국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돌들이 소리칠 때에야 비로소 화들짝 놀라서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돌들이 소리칠 때에야, 파국에 이르고서야 사태의 진실을 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고 또한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겠습니까? 

  돌들이 소리치기 전에 그런 날이 이르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여 왕되신 주님을 향하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시여" 소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면서도 역사의 방관자가 되어서 엉거주춤 잠잠하고 서 있습니까? 함께 소리쳐 부르짖어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처럼 소리치는 자와 소리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주님을 향하여 오히려 저들을 책망하시고 입을 봉하게 하소서하고 심통을 부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각자가 시시때때로 소리쳐야 할 때에 침묵치 아니하고, 소리를 내는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