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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아품에 "아하 좋다"하지 않기(겔 25:1~3)

유앙겔리온 2025. 3. 4. 22:33

이웃의 아품에 "아하 좋다"하지 않기
겔 25:1~3 

겔25: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겔25:2 인자야 네 얼굴을 암몬 족속에게 돌리고 그들에게 예언하라 
겔25:3 너는 암몬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 성소가 더럽힘을 받을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이스라엘 땅이 황폐할 때에 네가 그것에 관하여, 유다 족속이 사로잡힐 때에 네가 그들에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 하였도다 

  그 동안 우리가 사는 사회에 크고 작은 많은 불행한 일들이 있어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일어난 사건 사고를 겪으면서 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했고, 피해자들은 견디기 힘든 슬픔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피해를 당한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어김없이 그러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2차 가해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서 문제시 되고 있습니다. 이미 당한 것만으로도 힘겨운데 상처를 후벼파는 이들이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어김이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련당하는 자를 조롱하는 일, 이러한 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이 엄청 싫어하시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암몬'의 죄악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이 불타고 성소가 더럽혀지는 것과 이스라엘 나라가 황폐해진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게 망하여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며 그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아하 좋다'라고 한 일이었다고 성경은 말하여주고 있습니다.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몬은 이스라엘의 성전이 무너진 일에 대해서, 북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하여, 남유다의 무너짐에 대하여, 손뻑을 치고, 발을 구르며 "아하 좋다"하면서 즐거워하며 조롱했습니다. 

  유다가 망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그저 "고소하다"라고 생각한 정도가 아니고, 그것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암몬을 심판하시겠다고 예고하셨고 역사 안에서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들은 다른 형제의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고 조롱하고 즐거워하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암몬의 심판 예고를 통하여 이웃의 불행을 목적으로 여러 일들을 모의하고, 실행하는 사람들과 나라와 민족들의 결말을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에게 어떻게 하는가를 유심히 살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서 이웃이라고 하면 이웃의 문제에 깊이 공감해야 하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이웃이라고 하면 아풀 때 함께 아파하고, 목마를 때 함께 목말라하는,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돌보아주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겔 25장에 나오는 암몬, 모압, 에돔, 블레셋의 공통점은 이웃의 도리를 다하지 않은 민족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함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행동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언 17:5절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비웃는 자는 그를 지으신 자를 멸시하는 것이요,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벌을 면치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고, 잠언 24:17-18에서는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5:40절에서도 예수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웃의 고통을 경시하거나 심지어 즐거워하는 행동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이며, 이에 대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함께 돕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이웃입니까? 좋은 이웃입니까? 나쁜 이웃입니까? 좋은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귀찮고 피곤한 일일 수 있고, 허비하고 낭비하지 않을 것을 허비하고 낭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웃 때문에 애매하게 고난에 직면할 수도 있습니다. 당하지 않아도 될 손해를 입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을 위하여 심고 있는 모습을 기억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웃의 일과 같은 것을 겪게 되었을 때에 그 기억을 끄집어내서 갚아주실 것을 믿습니다. 

  시편기자는 시35:12~13절 말씀에서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나는 그들이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의 행위의 손익의 첫번재 당사자는 타인이나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게서 나간 것이 내게로 다시 돌아옵니다. 돌아올 때는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새끼까지 달고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그렇게 하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품으로 돌아옵니다. 아까워하지 말고 부지런히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과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5:7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으며, 또한, 마태복음 25:34-36에서는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라고 하며,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돕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돕는 행동은 하나님의 축복과 보상을 받는 중요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돕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암몬같이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당하는 자를 보면서 "아하 좋다"하지 않기를 하나님 앞에서 약속합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것과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셨다고 해서 고난 받은 자를 가볍게 여기고 아하 잘 되었어, 아하 좋다하는 것,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이웃이 고난을 당할때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이 아파할 때, 그 아파하는 것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힘든 순간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이유 중에 하나도 우리 주변에, 우리 이웃에 어려움을 겪는 이가 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되라고 그렇게 하심인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