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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도우심(대하 26:15~16)

유앙겔리온 2025. 2. 24. 20:45

기이한 도우심
대하 26:15~16 

대하26:15 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대하26: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 중에는 잔잔하고 평이한 도우심들이 많지만 하나님, 도우심 중에는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있음을 인정하고 확신하며 삽니다. 

  오늘은 이“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에 대하여 살피려고 합니다. 

  본문 말씀에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해짐을 받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남유다의 왕인 웃시야입니다. 웃시야 왕은 다윗과 솔로몬 이후 남 유다 역사상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장 강성한 시대를 만들었던 군왕이었습니다. 

  성경은 웃시야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너무나 선명하게 밝혀줍니다. 웃시야란 그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16살에 왕이 된 그는 52년 동안 유다를 치리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여호와는 나의 힘”이라 여기고 고백하고 의지함으로 여호와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었습니다. 

  그의 관한 기록중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웃시야가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았던 사람이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15절 하반절에 보면, 웃시야가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했습니다. 

  여기 ‘기이한 도우심’이라고 할 때, ‘기이한’이라는 히브리 단어 ‘팔라’는 ‘넘치는, 비상한, 놀라운(하나님의 기적 행위), 너무 어려운(설명불가, 성취불가한), 구별되는, 경탄할 만한’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느낄 만큼 놀라운 도우심입니다. 그래서 바랄 수 없는 도우심인데 그런 놀라운 도우심을 웃시야가 입은 것을 의미합니다. 

  웃시야의 “강성하여짐”은 사람의 노력뿐만 아니라 그 진정한 원인이 하나님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힘입어” 놀라운 강성함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받은 것은 언제였습니까? 그가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여호와를 간절히 찾을 동안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승부할 때였습니다.

  대하 26:4~5절에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그 부친 아마샤의 좋은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가 생존할 동안에 그를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렇게 겸손히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웃시야를 형통케 하셨고, 강성하게 하셨습니다. 

  엘롯을 건축하하게 하셨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영토를 넓혀주셨습니다. 강한 나라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번영하고 부요한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하셨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의 강성함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입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렇게 위대한 왕정을 베풀어 가던 중에 그에게 마귀가 틈타게 되었습니다. 16절 상반절에,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져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악을 행했습니다. 해서는 안될 일을 했습니다. 

  이로 인한 결과로 그의 인생이 곤두박질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자신의 성공의 열쇠를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라고 여기지 않았음으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신에게 돌린 것입니다.

  마르지 않은 샘과 같았던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마른 샘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15절과 16절 사이에는 깊은 수렁이 존재합니다. 겸손한 웃시야와 교만한 웃시야의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수렁입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해졌을 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겸손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가 자신을 낮추어 어린아이같이 되었을 때, 그럴 때는 그가 도리어 강성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 그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강성함이 자기 능력, 두뇌의 명석함, 탁월한 리더십의 산물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웃시야는 강성하게 되자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기이하게 도우셨다는 것을 망각했습니다. 자기가 원래부터 강성한 자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자기가 강하다고 느껴 하나님 앞에서 목이 뻣뻣해지고 하나님을 구하지 않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보고 인정하는 일에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인정하는 일에 실패한 그 결과는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마음의 교만함은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직접 분향을 하려고 함으로써, 제사장 고유의 일을 침범했습니다. 왕으로서 자신은 성전에서 하나님께 분향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아니 자신은 이제 누가 제사를 드려주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고 자신이 제사를 주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그가 교만하여지고 분수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의 앞에서 악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얻으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치셨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이 임하는 것은 모든 인생들이 원하는 바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에 나타난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을 하나님의 기이한 도우심으로 인정하지 못하면 그 누구라도 웃시야의 마지막 자리로 가게 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웃시야의 후반기는 처참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그의 조부 요아스도, 부친 아마샤도 그러했습니다. 처음에는 잘 하다가 나중에는 교만하여 비참해지는 이상한 흐름이 그 가문을 이어오고 있었습니다. 

  웃시야와 그 가문에 이어져 온 처음은 잘 하다가 나중에는 교만하여 비참해지는 이러한 이상한 흐름을 끊어내버려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웃시야의 이야기는 웃시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의 탄핵정국의 이야기기도 하고, 모든 인생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인생 후반으로 갈수록, 정권 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끝까지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끝까지 하나님을 겸손히 찾는 자를 찾으시며, 만나주시며 기이한 도우심마져 아끼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