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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있는 성도들(시 16:3)

유앙겔리온 2024. 2. 27. 13:59

땅에 있는 성도들
시 16:3

시16: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선명하게 찾아서 그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 때, 그에 맞게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은 시편기자를 통해서 이 땅에서 예수 믿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하나님의 눈에는 어떤 존재로 보시는가를 알려주시는 귀한 말씀입니다. 

  함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것을 알아보면서 은혜받는 시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땅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성도들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성도들”입니다. 땅에서 숨 쉬고, 땅에 발을 붙이고, 땅에서 온갖 씨름을 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믿음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아시며 감찰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도우십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행복도 주어지지만 겸하여 고통과 슬픔, 죽음의 이별, 재난과 재앙도 주어집니다. 그 누구라도 비켜만 가지는 않습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이런 것에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함께 한 교회공동체에 속한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아직 영원한 영광에 완전하게 들어간 성도들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땅에 있는 성도이기 때문에 때때로 다른 사람에 비해서 불리한 상황과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갈등과 어려움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구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땅에 있는 성도”가 받게 되는 자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없이는 주어지 않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성도”는 그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것을 원하시는다 것을 받아드리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이 땅은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의 세력이 강하게 지배하고 역사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곳에서 하나님은 끝까지 진리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온전한 성도를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온전한 성도로 인하여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사단은 이 마지막 때에 성도에게 죄를 짓게 하고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벌려놓고 멀어지게 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땅이 더러워서, 땅이 두려워서 땅을 피하여 사는 자가 아닙니다. 이 땅을 감당할 수가 없으니까 도피처로서의 하나님 나라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실생활과 신앙의 이유로 고난과 역경을 당하지만 그것을 살아내면서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의 삶을 하나님 주신 단 한번의 기회로 알고 성도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2, 이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입니다. 

  `존귀하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 “크고 위대하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궁궐에는 다윗시대에 있어서 모든 우수하고 탁월한 인재들은 거기 다 모여 있었습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 능력이 뛰어난 사람, 학식에 깊이와 넓이가 측량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고관대작들보다 성도가 더 존귀하고 자기의 모든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해럴드 모로위츠, 미국 예일대 교수는 오랫동안 나사(NASA)의 컨설턴트로 활동했습니다. 아폴로 11호의 검역절차계획위원회에서 일했고, 화성탐사선 바이킹호의 생물학 실험을 담당했습니다. 그는 아미노산 단백질 등을 결합해 인간처럼 사고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존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6000조 달러가 든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단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가치 있게 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도는 6000조 달러가 아니라 천하보다 귀하다고 주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그와같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내려오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져주신 것입니다. 

  인생을 존귀한 자로 살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이처럼 존귀한 자임을 알아 합니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가 어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에 우리는 찬란하게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우울하게 하는 것들이 많은 세상이며, 성도는 그 땅 위에 사는 성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악이 많은 이 땅에 있는 이들이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의 “성도들이라고 하면” 하나님에게는 “존귀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어리석어 보여도 우리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두신 성도이며 존귀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권세로 존귀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됨으로 말미암아 존귀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과 성도들을 보면서 "성도인 나는 존귀하다! 그리고 성도인 당신도 존귀하다."라고 고백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땅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며 의지하는 자들을 매우 소중하게 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땅에 있는 성도들을 이렇게 존귀하게 여기시니 그에 합당하도록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존귀한 자로 살며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일에 참예하여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32:8절에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했습니다. 우리는 존귀한 자이니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항상 존귀한 일에 서야 하겠습니다. 존귀한 자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과 품위를. 그 수준을 지키기 위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일에 전념해야 하겠습니다. 

  3, 우리를 향하여 “나의 모든 즐거움”이라 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즐거움이 땅에 있는 존귀한 성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땅위에 있는 성도들을 쓸모없고, 거추장스러운 잉여 자원으로 여기거나, 경쟁해서 이겨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면 마음이 기쁘고 즐거울 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에 있는 성도들을 그 어떤 권세자들이나 능력자들보다 더 존귀하게 여기시니 더 기뻐하고 즐거워 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오늘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심정을 통해서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다윗도 자신처럼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와 찬양을 드리고자 하는 이들이 이렇게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데 하나님은 더하셨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임을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즐거워 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더 즐겁게 해드리기 위한 목표를 삼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도록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드립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이 곧 나의 기쁨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땅 위에서 땀흘려 수고하며 온갖 시험들을 견디어내며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 성도들은 존귀한 사람들이며 하나님의 모든 기쁨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