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느 8:9~12)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
느 8:9~12
느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8: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느8: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우리는 지금 정서가 매우 요동치는 때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긴 장마와 그로 인한 여러가지 재앙과 재난을 겪고 있으며, 심한 무더위, 그리고 방학과 휴가철, 그 한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과도한 정서적 불안과 출렁이는 흥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정서를 잘못 다스리면 실족할 수 있습니다. 이 정서를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이 정서를 말씀으로 잘 다스릴 수 있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의 배경은 유대 남북왕조의 포로사와 포로귀환사가 얽혀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성곽이 다 훼파되어 더러는 죽임을 당하고 짓밟히고 더러는 포로되어 끌려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닥사스다 왕의 명에 따라서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제3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습니다.
돌아온 이들은 우역곡절을 겪고서 성곽을 짓고 예루살렘을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복원했다고 해서 다 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어린아이가 지키고, 눈먼자가 지켜도 지킬 수 있는 천연요새인 안전지대에 세워졌으며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성벽이 없어서 공격을 당하고, 성을 지키는 자가 없어서 성이 무너지고, 지도자가 없어서 이방의 포로가 되어 끌러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견고한 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음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127:1~2을 통하여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 육신적인 만족과 즐거움을 위하여 견고한 성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견고한 성이 그들을 지켜주지 못할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기쁨을 주지도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복원하고 하드웨어를 갖추게 되었으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는 슬퍼하고 울며 근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에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을 불러놓고서 "슬퍼하지 말라, 울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반복되고 지속되면 힘이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힘이 빠지면 할일도 할 수 없습니다. 있는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힘이 빠지게 됩니다. 더욱이 자신의 형편없는 실패의 모습을 주목하게 될 때,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이처럼 자신의 모습을 주목하면서 슬퍼하고 울고 있고 근심에 쌓여 있는 유대 귀환민들에게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으로도 즐거움을 얻을 수고 약간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무어라 하십니까?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라"고 한 것입니다. 잠깐의 즐거움이 아닌 참된 기쁨을 격려한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나누는 일을 하되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즐거움에 빠져 중독되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자들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나누는 일은 일시적이고 감각적 차원의 쾌락이지만,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은 고통이나 불편이 동반된 정신적이고 영적인 황홀함입니다.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 가운데서 있을지라도 주님을 바라고 주님께 맡기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럴때 내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힘이 생기고. 그 힘이 발현되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했습니다.
여기서 '힘'이라는 단어를 보면 히브리어로 '마오-즈'라는 단어인데, '능력', '세력'이란 뜻 뿐만 아니라 '성곽', '피난처', '요새', '보장', '산성', '투구', 등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마오-즈는 이런 말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말씀에 '너희의 힘'이란 '너희의 성곽, 너희의 피난처, 너희의 요새, 너희의 보장, 너희의 산성', '너희의 구원의 투구'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을 감래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무거운 짐도 있고, 두려움도 있고, 앞으로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도 있습니다. 질병도 있고 전쟁도 있고 견디기 힘든 수치스러움도 있고 실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해주시는 이 한 가지만 분명히 하면 됩니다. 그것은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이들이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 기쁨이 우리의 '성곽', '피난처', '요새', '보장', '산성', '투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비관적 인생관을 결코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살아 계셔서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표현은 진정한 기쁨을 항상 수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하나님의 백성은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보장이 되시며 산성이 되어주시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슬픔이나 낙심에 빠져 살지 않게 됨을 말씀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다른 그 어떤 것도 궁극적이고 영원한 우리의 성곽이 되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 성곽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곽, 피난처, 요새, 보장, 산성, 투구를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데에서'부터 찾아야 될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성곽, 피난처, 요새, 보장, 산성, 구원의 투구입니다.